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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토리

남자의 외도는 여자의 외도를 당하지 못한다.

by 별동별 2020. 3. 7.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자기는 외도를 해도 내 아내만큼은 절대로 외도를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통계적으로 우리 나라 여자의 외도율이 거의 50%를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믿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역사책에서 십자군 원정 때 자기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웠다고 배웠다. '정조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그 당시였지만 오히려 14~16세기 때 그 이용 빈도수가 더 많았다. 당시 남자들은 유행처럼 남의 아내를 탐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처럼 남자들의 그런 욕구가 유부녀의 외도를 부추겼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기는 남의 아내를 넘본다해도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자기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자랑이었지만 자기 것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정조대'이다. 

당시 유럽 사회는 처녀성을 존중하는 기독교적인 도덕관 때문에 처녀성을 잃은 미혼녀는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척 당하고 비난을 받았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서 남자가 처녀성을 범하는 것은 죄가 되었다. 그래서 처녀가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남자 역시 뒤탈이 생기기 때문에 처녀와의 섹스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또 당시에는 매독이 성행했다. 매독은 새로운 전염병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콜럼버스 휘하의 선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매독은 성기에 궤양이 생기고 입 속이 헐고 수족이 썩어나가는 지독한 병이었다. 어떤 약을 써도 속수무책이었다. 매독으로 코가 떨어져 나가는 남자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마음놓고 창녀를 찾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성적으로 능숙한 과부나 유부녀와 섹스를 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섹스를 하면 됐지 왜 외도를 하느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남자들도 오늘날처럼 한 여자와 오랫동안 성 관계를 가지다보면 싫증을 느끼기 때문에 한눈을 팔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남자들은 자신의 바람기를 마치 종족 보존을 위해 가능한 많은 씨를 뿌리려는 수컷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거꾸로 말하면 여자가 강한 남자를 찾는 것은 우량한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암컷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편보다 우월한 남자와 외도를 하는 것은 여자의 당연한 본능인 것이다. 결국 16세기 여자들의 외도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 된다.

귀부인들이 왕의 애인이 되는 것은 장래의 영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였고 설령 총애를 잃는다해도 왕의 애인이었다는 신분만으로도 고위고관과 쉽게 결혼할 수 있었다. 비록 결혼은 아니더라도 미모만 있으면 왕을 유혹해서 남편을 높은 지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고 광대한 영지까지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여자들은 외도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성적 매력은 영달의 수단이었고 미모는 훌륭한 재산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14세기에 쓰여진 데카메론에 보면, 남편이 다 사용하고 남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주는데 그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여자들은 자신의 외도를 당당하게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유부녀가 임신을 해도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여자는 오히려 신분 상승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성욕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유혹을 뿌리칠 이유가 없었다. 설령 들통이 난다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내란 남편의 재산이기는 하지만 명예를 주장할 존재는 아니었다. 따라서 성에 있어서도 자기 주장을 갖지 못했다. 간통을 해도 남편의 명예에는 금이 가지만 여자는 스스로 창피해할 입장이 아니었다. 

물론 그 사회에는 간통죄가 있었다. 그러나 사제 앞에서 참회를 하고 은행에 가서 면죄부만 사면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언뜻 남자들이 외도를 하기에 너무나 좋은 법인 것 같지만 그것은 외도를 하는 여자에게도 좋은 법이었다.

남자들이 남의 아내를 탐내면 탐낼수록 아내들 역시 다른 남자들과 열심히 외도를 했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피울수록 상처를 받는 것은 바로 남자들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자신 이외에 다른 남자는 모두 도둑이라고 말해왔는지 모른다. 이무리 그렇게 말해도 여자의 외도를 막을 수 없다 보니 남자들은 자신도 외도를 하지 않을 테니 여자들도 외도를 하지 말라고 법을 만들게 되었다. 여자의 외도에 남자들이 항복한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오랜 논의 끝에 더 이상 여자들의 문란한 성생활을 묵인할 수 없다고 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과 같은 결혼제도이다. 결혼은 일부일처의 지속적인 혼인이며 안정되고 순결한 혼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축첩과 이중혼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혼은 상대방이 사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도록 강요당한 쪽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결국 남자들이 여자를 속박하기 위해 오늘날과 같은 결혼제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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