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 스토리

조선시대 사람들도 멀티 오르가슴을 즐겼다?

by 별동별 2020. 3. 7.

춘향이와 이몽룡은 어떻게 섹스를 했을까?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섹스를 했을까? 자유분망했던 고려시대와는 달리 유교의 영향으로, 성적으로 보수적이었을 조선시대라면 여자들은 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남자 역시 성적으로 숙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춘향전만 보아도 이몽룡과 성춘향이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첫날밤을 능숙하게 치루는 것을 보면 남녀 모두 성적으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춘향전을 보면 "두손으로 한데 쥐고 속옷끈을 끌러내어 두 발로 미적미적 속옷을 밀친 후에 알몸으로 둘이 누워 온갖 장난 다 한 후에 웬 좋은 그 노릇을 몇 번이나 되었는지 미명에 일어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중에 보면 '알몸으로 둘이 누워 온갖 장난 다 한 후에'라는 말이 나온다. 어떻게 첫경험을 하는 남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섹스를 할 수 있었을까?

춘향이는 기생의 딸이라 그랬을 것이라 생각된다해도 이몽령은 어떻게 그리도 잘 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처럼 남자가 혼자 알아서 섹스를 하게 하고 여자는 가만히 누워서 자신을 맡기고만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조선 시대 양반집에서는 자식에게 성교육을 시킨 다음에 혼례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여자는 규방에서 남자는 사랑방에서 성행위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각 집안마다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섹스를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에 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오히려 거부감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대추를 질속에 보관한 이유 


비록 야사(野史)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양반집에서 첩을 들였는데 그 첩에게 대추 두 개를 주면서 그것을 질 속에 보관하라고 했다. 이유는 옛날 우리 선조들이 여자의 질액을 아주 훌륭한 불로장생 약으로 생각했고 또 대추를 질 속에 넣어두면 여자의 젊은 음기가 대추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먹으면 정력이 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질 속에 대추를 보관하게 했던 것이 단순히 회춘(回春)약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다기 보다는 또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일종의 여자의 질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 방법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이런 훈련을 통해 여자들이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든 뒤에도 성 기관이 젊은 미혼 여성의 그것 못지않게 탄력 있고 신축성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요즘 멀티 오르가슴을 훈련하는 사람들이 돌알을 질 속에 넣어서 훈련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질속에 대추 넣기 

대추를 질 속에 보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선 대추를 질 속에 집어넣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처럼 젤리나 윤활유가 있어서 삽입을 용이하게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당시에는 젖가슴을 마사지해서 흥분을 하게 만든 다음, 질이 팽창되고 질액이 분비되면 그때 삽입을 했을 것이다. 먼저 대추의 넓은 쪽으로 삽입하고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을 것이다.

대추를 무조건 집어넣는다고 해서 보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추는 서 있으면 밑으로 흘러내려오게 되므로 기본적으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질 속에 대추를 보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만 있게 하지도 않았다. 여자는 어떤 자세에서도 대추가 떨어지지 않도록 자궁을 수축시켜서 질관을 단단히 조여주었을 것이다. 대추는 하나가 아니고 두 개다. 그러다보니 대추는 자연스럽게 자궁경부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여자는 숨을 들이마시고 동시에 두 부위를 한꺼번에 수축을 시키기 위해 자궁경부 앞의 질관을 재빨리 수축시켜야 한다. 대추가 단단히 조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질관으로 조여준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조이고 내쉬면서 풀어주다보면 대추는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가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대추를 며칠씩 질 속에 넣어두어서 질액에 절여지게 만드는 이유는 요령이 생겨서 대추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움직일 때마다 대추가 질에서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웃는다거나 기침, 재채기로 인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대추가 질밖으로 빠져 나올지 모르므로 긴장해 있어야 하고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

대추 두 개를 넣게 하는 이유는 각기 양 방향으로 또는 위·아래로 두 개의 대추를 이동시키거나 서로 부딪치게 만들어서 그 울림으로 내부 기관을 자극하는 고도의 기술을 구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질 속에서 대추가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즉 위·아래, 좌·우로 움직여서 질근육을 자유자재로 수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흡입능력은 출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성생활에서도 질관의 위·아래 두곳을 따로따로 조여서 자신의 쾌감은 물론이고 남자에게도 커다란 기쁨을 주게 된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섹스 

그러나 여자만 질을 조인다고 해서 그 쾌감을 남자가 느낄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만약 남자가 조루라면 여자가 조금만 질을 조이면 남자는 쉽게 사정해버려 낭패를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조루가 없었단 말인가?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기운동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PC근육 강화훈련을 했을 것이라 예측이 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양반들의 섹스가 어떠했는지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보수적이라 생각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아내와 섹스를 할 때 바로 멀티 오르가슴을 서로 느끼면서 섹스를 했다고 생각해도 틀림이 없다. 질액에 절여진 대추를 강장제로 먹음으로써 여자의 질 냄새에 친근감을 가졌을 것이고 여자의 질액을 불로장생 약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여자의 질액을 먹기 위해 여자를 흥분시켰을 것이다. 그런 다음 삽입을 해서 섹스를 하면 여자의 질은 위·아래에서 따로따로 조여줌으로써 성적 쾌감을 극대화했을 것이다. 물론 남자가 자유자재로 사정을 조절할 수 있었기때문에 여자도 멀티 오르가슴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양반집에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를 찾아 말을 가려가며 했던 것이 아닐까?

댓글